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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이름에 대한 유래와 역사, 문화유산

[지명사전] 고인돌의 영속함과 모양성의 절개가 깃든 땅, 고창(高敞)의 유래와 역사

by sang4242 2026. 4. 17.

  • 고창(高敞)이라는 명칭은 '높고(高) 탁 트인(敞)' 지형적 특성에서 유래하였으며, 고려 시대인 940년에 처음 명명되어 서해안의 풍요로운 들판과 드높은 기상을 지닌 고을임을 상징합니다.
  • 고대 마한의 모로비리국에서 시작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 유적을 품은 '선사 시대의 성지'이자 조선 시대 읍성의 전형인 모양성을 지켜온 호국의 현장이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람사르 습지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청정 생태 문화 도시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목차

  1. 머리말: 산과 바다, 그리고 유구한 세월이 빚어낸 역사의 보물창고 고창
  2. 지명의 유래: '높고 넓은 세상' 고창(高敞)이라는 이름의 변천과 의미
  3. 고대의 역사: 고인돌 왕국에서 마한의 모로비리(牟盧卑離)국까지
  4. 중세와 근세의 역사: 고려의 고창현 승격과 조선 시대 모양성의 축조
  5. 역사적 인물과 설화 1: 판소리의 중시조 동리 신재효와 소리꾼들의 서사
  6. 역사적 인물과 설화 2: 미당 서정주의 시문학과 고창이 준 예술적 영감
  7. 구국의 역사: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 장군과 무장포고문의 기개
  8. 고창의 관광과 미식: 선운사의 꽃무릇과 기력을 보하는 풍천장어의 맛
  9. 맺음말: 이름 속에 담긴 드높은 가치로 세계 유산을 꽃피우는 고창군

1. 머리말: 산과 바다, 그리고 유구한 세월이 빚어낸 역사의 보물창고 고창

  • 전북특별자치도의 서남단에 위치한 고창군은 동쪽으로는 노령산맥의 줄기가 감싸 안고, 서쪽으로는 광활한 서해를 접하고 있는 배산임수의 명당입니다.
  • 고창은 우리에게 '청보리밭'의 푸르름이나 '선운사'의 동백으로 친숙하지만, 사실 이 땅은 한반도 인류 문명의 시작부터 근대 민주주의의 여명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는 역사의 화석과 같은 곳입니다.
  •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밀집된 선사 시대의 수도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민초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쌓아 올린 모양성의 눈물겨운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근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동학농민혁명의 실질적인 깃발이 올랐던 뜨거운 저항의 땅이기도 합니다.

2. 지명의 유래: '높고 넓은 세상' 고창(高敞)이라는 이름의 변천과 의미

고창(高敞)이라는 지명은 지역의 지형적 우월함과 개방성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1. 높을 高(고)와 높고 넓을 敞(창): 지명 그대로 '지대가 높고 시야가 탁 트인 땅'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고창이 방장산 등 험준한 산맥을 등지고 있으면서도 서해안으로 향하는 넓은 평야 지대를 확보하고 있어, 기상이 드높고 물산이 풍부함을 상징합니다.
  2. 모량(牟陽)에서 고창으로: 고구려 시대에는 모량부리현 혹은 모양현이라 불렸습니다. 이는 '보리 고을'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을 한자로 옮긴 것으로, 지금도 고창의 상징인 보리(牟)와 깊은 인연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940년(고려 태조 23년)에 이르러 비로소 지금의 고창이라는 세련된 명칭으로 확정되었습니다.
  3. 행정의 통합: 1914년 고창현, 무장현, 흥덕현이 통합되어 현재의 고창군 체제가 완성되었습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세 고을이 합쳐지며 고창은 더욱 풍부한 역사적 층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3. 고대의 역사: 고인돌 왕국에서 마한의 모로비리(牟盧卑離)국까지

고창의 역사는 한반도에서 가장 찬란한 선사 문화를 꽃피운 '거석 문화의 메카'로서 시작됩니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인돌 군락: 고창군 아산면 일대에는 447기에 달하는 고인돌이 밀집해 있습니다. 이는 단일 구역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고대 고창 지역에 거대한 정치 세력과 고도의 문명을 갖춘 지배층이 존재했음을 증명합니다.
  • 마한의 중심지: 삼국 시대 이전, 고창은 마한 54개국 중 하나인 모로비리국의 터전이었습니다. '모로'는 우두머리나 산을, '비리'는 벌판을 뜻하는데, 이는 산과 들을 모두 갖춘 고창의 지형적 장점을 잘 보여줍니다.
  • 백제의 요충지 모양현: 백제 시대에는 모양현이라 불리며 서해안 방어와 해상 무역의 주요 거점으로 활용되었습니다.

4. 중세와 근세의 역사: 고려의 고창현 승격과 조선 시대 모양성의 축조

중세 이후의 고창은 호남의 행정 거점이자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는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다해왔습니다.

 

  1. 고려 시대의 고창: 940년 고창이라는 이름을 얻은 후, 고창은 나주의 속현으로 관리되다가 점차 독립적인 현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시기 고창은 선운사를 중심으로 불교 문화가 융성했습니다.
  2. 모양성(고창읍성)의 축조: 조선 단종 원년(1453년),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전라도 민초들이 힘을 합쳐 모양성을 쌓았습니다. 돌 하나하나에 고을 사람들의 정성이 깃들어 있으며, 성벽을 밟으면 무병장수한다는 '답성놀이'는 고창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을 보여주는 소중한 역사 유산입니다.
  3. 조선 후기의 풍요: 고창은 비옥한 토양과 갯벌 덕분에 조선 시대에도 살기 좋은 고을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무장현과 흥덕현 역시 각자의 행정 기틀을 닦으며 고창의 역사적 부피를 키웠습니다.

5. 역사적 인물과 설화 1: 판소리의 중시조 동리 신재효와 소리꾼들의 서사

고창은 대한민국 전통 예술인 판소리를 집대성한 예술의 본향입니다.

 

  • 판소리의 대부 신재효: 고창 출신인 동리 신재효 선생은 흩어져 있던 판소리 사설을 6마당으로 정리하고 창법을 체계화했습니다. 그는 신분을 초월해 소리꾼들을 후원했으며, 최초의 여창 소리꾼인 진채선을 길러내기도 했습니다.
  • 소리의 터전 동리정사: 그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동리정사는 고창의 문화적 자존심입니다. 고창 사람들은 거친 바닷바람과 너른 들판의 기운이 판소리의 깊은 울림을 만들어냈다고 믿어왔습니다.

6. 역사적 인물과 설화 2: 미당 서정주의 시문학과 고창이 준 예술적 영감

현대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이 바로 고창입니다.

 

  • 시(詩)의 뿌리, 질마재: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 마을은 그의 문학적 상상력의 근원이었습니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라는 그의 고백처럼, 고창의 바람과 흙은 한국 현대시의 가장 풍요로운 감수성을 빚어냈습니다.
  • 미당시문학관: 낡은 초등학교 건물을 활용한 시문학관은 고창이 지닌 인문학적 깊이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7. 구국의 역사: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 장군과 무장포고문의 기개

고창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인 동학농민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혁명의 발상지입니다.

 

  1. 무장기포(1894년): 전봉준 장군이 태어난 곳이 고창이며, 혁명의 불길을 전국으로 확산시킨 무장포고문이 발표된 곳도 고창 무장면입니다. 이는 단순한 민란을 넘어 체계적인 개혁의 기치를 든 역사적 분기점이었습니다.
  2. 창의문과 구국의 함성: 고창의 농민들은 부패한 권력과 외세에 맞서 스스로 무장을 갖추고 일어섰습니다. 고창은 동학군의 훈련장이자 보급로였으며, 그들의 숭고한 희생 정신은 고창의 역사 속에 저항과 정의라는 이름으로 새겨졌습니다.

8. 고창의 관광과 미식: 선운사의 꽃무릇과 기력을 보하는 풍천장어의 맛

고창은 이름처럼 탁 트인 자연 속에 대지가 내어준 최고의 선물들을 품고 있습니다.

 

  1. 선운사 국립공원: '구름 속에서 선도를 닦는다'는 뜻의 선운사는 사계절 내내 아름답습니다. 특히 가을이면 온 사찰을 붉게 물들이는 꽃무릇과 겨울의 동백은 고창의 서정을 대표합니다.
  2. 고창 고인돌 박물관: 선사 시대 인류의 삶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세계적인 박물관입니다. 야외 전시장과 함께 고창의 영속적인 역사를 보여줍니다.
  3. 풍천장어와 복분자: 고창 선운사 앞 인천강의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잡히는 풍천장어는 고창 최고의 미식입니다. 여기에 고창의 붉은 보석 복분자주를 곁들이면 고창의 정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4. 고창 수박과 바지락: 미네랄이 풍부한 황토에서 자란 수박과 서해 갯벌의 바지락은 고창이 제안하는 건강한 맛의 역사입니다.

9. 맺음말: 이름 속에 담긴 드높은 가치로 세계 유산을 꽃피우는 고창군

  • 고창(高敞)이라는 이름은 수만 년 전 거대한 돌을 옮기던 고대인의 협동심과, 읍성 위를 걸으며 나라의 안녕을 빌던 아낙네들의 소망이 담긴 이름입니다.
  • 질마재의 바람은 시인의 노래가 되었고, 무장벌의 함성은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 모양성 성곽길을 걸으며 선조들의 호국 의지를 되새겨보고, 선운사 숲길에서 고요한 사색의 시간을 가지며, 이름 속에 담긴 '높고 탁 트인 기상'을 직접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 고창의 역사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의 푸른 생명력처럼 오늘도 서해안의 대지를 풍요롭게 적시며 세계로 뻗어 나가는 문화 유산의 도시로서 역동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