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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이름에 대한 유래와 역사, 문화유산

[지명사전] 전주를 품은 어머니의 땅, 풍요와 충절의 고장 완주(完州)의 유래와 역사

by sang4242 2026. 4. 11.

  • 완주(完州)라는 명칭은 '완전한(完) 고을(州)'이라는 뜻으로, 본래 전주와 한 몸이었으나 1935년 전주읍이 부로 승격되면서 주변 지역을 아우르는 이름으로 분리되었으며, '모든 것이 갖춰진 풍요로운 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고대 마한의 터전에서 시작해 조선 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本鄕)으로서 왕실의 뿌리 역할을 했으며, 임진왜란 당시 웅치전투의 승리로 호남을 지켜낸 구국의 현장이자 현대에는 로컬푸드의 성지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목차

  1. 머리말: 전주를 감싸 안은 형세, 전북의 심장부 완주군의 위상
  2. 지명의 유래: '완전한 고을' 완주(完州)라는 이름에 담긴 철학
  3. 고대의 역사: 마한의 만로국(萬路國)에서 백제의 완산(完山)까지
  4. 중세의 역사: 후백제 견훤의 야망과 고려 시대 전주와의 동행
  5. 조선 시대의 역사: 조선 왕조의 발상지 '용진'과 왕실의 뿌리 깊은 서사
  6. 역사적 인물과 설화: 구이(九耳)면의 아홉 귀신 설화와 충경공 권율 장군
  7. 구국의 역사: 호남을 사수한 임진왜란 웅치(熊峙)전투의 결연한 기록
  8. 완주의 명소와 미식: 대둔산의 절경과 입맛 돋우는 완주 한우·순두부의 풍미
  9. 맺음말: 이름 속에 담긴 완전함으로 전북의 미래를 일구는 완주군

1. 머리말: 전주를 감싸 안은 형세, 전북의 심장부 완주군의 위상

  • 전북특별자치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완주군은 지도를 펼쳐보면 매우 독특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 전주시를 도넛 모양으로 완전히 둘러싸고 있는 완주군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전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샴쌍둥이'와 같은 관계입니다.
  • 동쪽으로는 진안, 서쪽으로는 김제, 남쪽으로는 임실과 정읍, 북쪽으로는 익산 및 충남 논산·금산과 접하는 사통팔달의 요충지입니다.
  • 완주는 우리에게 '로컬푸드의 발상지'나 'BTS가 다녀간 감성 여행지'로 친숙하지만, 사실 완주의 진정한 가치는 전주라는 거대 도시를 탄생시킨 '어머니의 품'과 같은 역사적 배경에 있습니다.
  • 조선 왕실의 시조가 터를 잡았던 신성한 땅이며, 나라가 위태로울 때 호남의 곡창지대를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의병들의 피와 땀이 서린 곳입니다. 

2. 지명의 유래: '완전한 고을' 완주(完州)라는 이름에 담긴 철학

완주(完州)라는 지명은 비교적 근대에 확정되었으나, 그 글자마다 담긴 뜻은 수천 년 전주(완산)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1. 완전할 完(완)과 고을 州(주): '완(完)'은 갓(宀) 아래 으뜸(元)이 있다는 뜻으로, '결함이 없이 온전하다',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완주는 '모든 물산이 풍부하고 사람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고을'이라는 뜻입니다.
  2. 전주와의 분리와 계승: 1935년 전주군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되어 분리될 때, 남은 주변 지역을 완주군이라 명명했습니다. 이때 '완(完)' 자는 전주의 옛 이름인 '완산(完山)'에서 따온 것으로, 전주의 뿌리가 바로 완주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3. 지명의 지속성: 완주라는 이름 속에는 단순한 행정 구역의 구분을 넘어, 전주와 완주가 본래 한 몸이었으며 전북의 정통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서려 있습니다.

3. 고대의 역사: 마한의 만로국(萬路國)에서 백제의 완산(完山)까지

완주의 역사는 한반도 서남부의 비옥한 평야를 바탕으로 고대 국가들이 세력을 키웠던 태동기부터 시작됩니다.

 

  • 마한의 만로국: 삼국 시대 이전, 완주 일대는 마한 54개국 중 하나인 만로국의 터전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만경강 상류의 풍부한 수자원을 바탕으로 초기 농경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웠습니다.
  • 백제의 요충지 완산: 백제 시대에 이르러 완주는 완산 혹은 비사벌이라 불렸습니다. 백제는 이곳을 전주(완산)의 배후 거점으로 삼아 곡창지대를 관리했습니다. 특히 완주군 봉동읍과 용진읍 일대에서 발견되는 백제 고분군들은 당시 완주가 중앙 귀족들이 탐낼 만큼 풍요로운 땅이었음을 증명합니다.
  • 신라의 전주(全州) 개칭: 757년(경덕왕 16년) 전국 지명을 한자어로 바꿀 때 완산은 전주가 되었습니다. 이때 '완(完)'과 '전(全)'은 모두 '온전하다'는 뜻을 공유하고 있어, 완주라는 이름의 원형은 이미 1,300년 전부터 확립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4. 중세의 역사: 후백제 견훤의 야망과 고려 시대 전주와의 동행

고려 시대까지 완주는 전주와 단 한 번도 분리되지 않은 채, 호남의 행정·군사·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 후백제의 별궁 터: 견훤이 후백제를 건립하고 전주를 도읍으로 삼았을 때, 완주 일대는 도성을 방어하는 전략적 요새였습니다. 전해지는 설화에 따르면 완주군 봉동 일대에는 견훤이 머물렀던 별궁이나 군사 훈련장이 있었다고 하며, 이는 완주가 후백제 부흥 운동의 심장부였음을 말해줍니다.
  2. 고려 시대의 불교 문화: 고려 시대 완주는 화암사, 송광사 등 유서 깊은 사찰들을 중심으로 불교 문화가 번성했습니다. 특히 완주 화암사의 극락전(국보)은 고려 시대 건축 양식을 간직한 보물로, 완주가 당시 지식인들과 승려들의 사색과 수행의 장이었음을 보여줍니다.
  3. 조운의 길목: 만경강 물줄기를 따라 호남의 세곡이 이동하던 완주는 고려 국가 재정을 지탱하는 물류의 핵심 통로였습니다.

5. 조선 시대의 역사: 조선 왕조의 발상지 '용진'과 왕실의 뿌리 깊은 서사

조선 시대에 이르러 완주는 '조선 왕실의 본향'으로서 성스러운 지위를 얻게 됩니다.

태조 이성계의 선조들이 대대로 살았던 터전이 바로 완주이기 때문입니다.

 

  • 전주 이씨의 발상지: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 이안사가 강원도로 이주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 완주입니다. 현재 완주군 용진읍과 이서면 일대는 전주 이씨 가문의 세거지로, 조선 왕실은 이곳을 자신들의 뿌리가 시작된 신성한 땅으로 예우했습니다.
  • 위봉산성과 행궁: 조선 후기, 전란이 발생했을 때 전주 경기전의 태조 어진을 피신시키기 위해 완주군 소양면에 위봉산성을 쌓았습니다. 산성 안에는 왕이 머물 수 있는 행궁을 지었는데, 이는 완주가 전주의 안녕을 책임지는 '최후의 요새'였음을 의미합니다.
  • 조선 지식인의 안식처: 완주의 수려한 산세는 허균 등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유람하며 문학적 영감을 얻던 곳이기도 합니다. 완주는 조선 500년 동안 왕실의 권위와 선비의 기품이 공존하는 공간이었습니다.

6. 역사적 인물과 설화: 구이(九耳)면의 아홉 귀신 설화와 충경공 권율 장군

완주의 땅 이름과 인물 뒤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숨어 있습니다.

 

  1. 구이면(九耳面)의 아홉 귀 설화: 완주군 구이면은 지형이 마치 아홉 개의 귀가 달린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또 다른 설화에 따르면, 옛날 이 마을에 아홉 개의 귀를 가진 괴물 혹은 아홉 명의 기인이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는 완주가 그만큼 기운이 강하고 신비로운 인물이 많이 배출될 땅임을 상징합니다.
  2. 권율 장군과 이치(梨峙)전투: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완주와 금산의 경계인 이치고개에서 왜군을 대파했습니다. 권율 장군은 완주의 지형을 완벽히 이용해 호남으로 진격하려는 왜군의 기세를 꺾었습니다. 완주 사람들은 권율 장군을 도와 군량을 조달하고 의병으로 참여하며 충절의 고장으로서 자부심을 키웠습니다.

7. 구국의 역사: 호남을 사수한 임진왜란 웅치(熊峙)전투의 결연한 기록

완주 역사에서 가장 눈물겹고 장엄한 순간은 임진왜란 당시 웅치전투입니다.

 

  • 호남의 관문을 지켜라: 1592년 7월, 왜군 전라도 관찰사 고바야카와가 이끄는 대군이 전주성을 점령하기 위해 완주군 소양면의 웅치(곰티재)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이곳이 뚫리면 호남의 곡창지대가 왜군의 손에 넘어가는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 민·관·군의 연합항전: 김제군수 정담, 해남현감 변응정 등과 함께 수많은 완주 의병들이 험준한 고갯길에 진을 치고 결사 항전했습니다. 화살이 떨어지자 돌을 던지며 싸웠고, 결국 마지막 한 명까지 전사하면서도 왜군의 진격 속도를 늦췄습니다.
  • 적도 감동시킨 충절: 왜군은 비록 승리했지만, 자신들을 막아선 조선군과 의병들의 용맹함에 감동하여 시신을 거두어 무덤을 만들고 '조조선국충의간담(弔朝鮮國忠義肝膽, 조선 나라의 충성스러운 의기와 간담에 조의를 표한다)'이라는 푯말을 세웠습니다. 완주 웅치전투는 호남을 지켜낸 '졌지만 이긴 전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8. 완주의 명소와 미식: 대둔산의 절경과 입맛 돋우는 완주 한우·순두부의 풍미

완주는 웅장한 역사 유적과 함께 대자연의 혜택을 듬뿍 담은 관광지와 먹거리가 가득합니다.

 

  1. 대둔산 도립공원: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대둔산은 기암괴석과 구름다리가 절경을 이룹니다. 권율 장군이 항전했던 이치전투의 현장이기도 하며, 완주의 기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명산입니다.
  2. 삼례문화예술촌: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기지였던 양곡창고를 예술 공간으로 재생한 곳입니다. 완주의 아픈 역사를 문화로 치유하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3. 소양 고택과 위봉사: 고즈넉한 한옥의 미와 천년 고찰의 고요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감성 역사 여행지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4. 완주 한우와 화산 붕어찜: 완주 고산면 일대의 한우는 육질이 부드럽기로 유명합니다. 또한 화산면의 붕어찜은 완주의 맑은 물이 선물한 깊은 맛을 자랑합니다.
  5. 화심 순두부: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에서 시작된 순두부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웅치전투의 현장 근처에서 먹는 뜨끈한 순두부는 완주 사람들의 따뜻한 인심을 대변합니다.

9. 맺음말: 이름 속에 담긴 완전함으로 전북의 미래를 일구는 완주군

  • 완주(完州)라는 이름은 단순히 전주 옆의 보조적인 고을이 아니라, 스스로가 '완전한 정통성'을 지닌 역사적 주체임을 상징합니다. 웅치전투에서 흘린 선조들의 피는 호남의 평화를 지켰고, 용진의 왕실 기운은 조선 500년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 대둔산 금강구름다리 위에서 호남의 너른 벌판을 내려다보며 완주의 기개를 느껴보고, 삼례의 붉은 벽돌 창고에서 역사의 변화를 실감하며, 이름 속에 담긴 '부족함 없는 풍요'를 직접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 완주의 역사는 멈춰버린 과거가 아니라, 만경강의 물줄기처럼 끊임없이 전북의 중심을 적시며 로컬푸드와 수소 산업이라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 역동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